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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작가

제8회 양평을 빛낸 원로작가전(신재석.이화자]
프로그램명 양평을 빛낸 원로작가전
기간 2019.10.11.-11.17.
장소 제 3전시실

?2019 미술여행-3, 가을프로젝트 <양평신화찾기-3>

제8회 양평을 빛낸 원로작가전

2019.10.11.-11.17.

[신재석, 이화자]



[신재석/1930년생]



상산(常山) 신재석(申載錫)선생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전통문화계승의 꽃을 가꾸어...



신재석(申載錫)선생은 1930년 함흥시 태어났다.
가족들은 1947. 8월 하순에 온 가족이 월남하게 되었으며 1950년 6.25 전쟁(戰爭) 중 아군이 초토화된 세 번의 사선에서 상처 없이 살아나 기적을 이루었다.



서예와 서각의 統合 美가 만들어낸 독창적인 예술세계


상산(常山) 신재석(申載錫)선생은 서예와 서각에 일가를 이룬 예술가이다. 어려서부터 한학자 부친에게 한학을 공부한 선생은 공무원 시절부터 서예(書藝)와 서각(書刻)의 미에 심취하여 한학자 홍찬유 선생에게 한학을 정통으로 공부하며 독학으로 전통 서법과 각법을 탐구하여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창출하였다.


이와 같은 인장문화의 예술성을 추구하여온 전각(篆刻)과 생활속의 기록으로 존재하여온 서각(書刻)은 용도의 기능에 따라 각법과 도법의 차이가 있지만, 엄밀하게 그 원리가 같다. 우리나라 근 현대사에 이와 같은 전각의  토착화를 일구어낸 철농(鐵農) 이기우(李基雨. 1921~1993)선생과 전통 서각의 역사를 정립한 각자장(刻字匠) 철재(鐵齋) 오옥진(吳玉鎭1935-2014)선생은 전통 전각과 서각의 정통성을 현대적인 예술로 승화시킨 쌍두마차와 같다.


상산(常山) 신재석(申載錫) 선생은 이와 같은 철농선생의 전각예술에 담긴 고졸한 아취를 깊게 인식하여 철재선생의 서각예술에 담긴 미학을 바탕으로 독창적인 예술을 창출한 흔적이 선생의 작품에 온전히 녹아내렸음을 살피게 한다. 이러한 활동은 용문산 국민관광지의 솟을 삼문 현판은 경건한 정신성이 녹아내린 선생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 받고 있다. 특히 선생이 양평용문사에 현액한  양평친환경박물관 현판은 그 중후한 무게감이 뛰어나다. 


신재석 선생은 한학에도 뛰어나 자신이 지은 한시집 산경만리(山徑萬里)와 여로(旅路)를 출판하였다. 또한, 선생이 펴낸 오백만 서예인을 위한 가훈 오백선(家訓五百選)은 서예인들의 교과서로 활용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양평군립미술관이 개최한 제8회 양평을 빛낸 원로 작가전은 매우 뜻 깊은 전시가 되고 있어 주목된다.


그 후 상산(常山) 신재석(申載錫)선생은 서울 후암동에서 직장 동사무소에서 공무원생활을 하다 퇴직 후, 북녘의 고향을 닮은 천혜의 자연을 동경하면서 경기도 양평군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용문면 광탄리가 선생의 제2 고향이 되었다. 여기에서는 그동안 갈고닦은 서예(書藝)와 서각(書刻)예술 재능기부를 하기로 하고 서예교실을 만들어 운영하였으며 후에 강상면의 노인정에서 시작한 서예동아리는 현재의 강상묵숙(江上墨塾)에 이르게 된다.




[常無欲以 觀其妙_33x53cm]




[省_35x33cm]




[소전자 黑紙金字 흑지금자]




[越女詞_36x47cm]





[才能寄附奉仕_ 재능기부봉사]







[이화자 / 1943년생]




한국채색화가의 정신을 잇는 내화 이화자 선생 - 한국의 미, 한국적인 정서를 극대화시켜 화단의 주목을 받아...



전통 불화 아닌 일반 회화 양식으로써 우리 미술의 뿌리, 아름다움을 화려한 오방색, 단순화된 면분할로 채색화의 추상표현을 극대화시켜와....


한국 채색화의 정착에 앞장선 이화자(1943~) 선생은 대구에서 아버지 이근수李根洙교수와 어머니 신만순申萬順 여사 사이의 차녀로 태어났다. 일본에서 유학한 부친을 비롯한 가족 6형제 중 3형제가 다양한 장르의 미술을 전공한 예술 가족이다.


이화자 선생은 어린 시절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하여 일찍부터 드로잉과 수채화를 익혔다. 1965년 홍익대 동양화과에 입학하여 박생광(1904-1985)교수와 천경자(1924- 2015) 교수의 지도를 받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지도교수들과(1960-70년대)함께 한국화의 재발견 즉, 우리문화의 정체성을 찾는 운동이 일어난 시기에 한국 채색화의 발전에 기여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이화자 선생은 대학졸업 후 10여 년 동안 채색화를 더한 수묵화에 정진해 오면서 80년대 이후 민족의 원형적인 빛깔에 대한 깊은  인식이 더해지면서 우리의 자연과 민속의 색감들을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은 채색화작업은 민족의 전통적인 빛깔로 구현되었다.


이와 함께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안동숙 교수와 조중현 교수를 만나게 되면서 동양화가로서 한층 심화된 예술적 감각과 정신성을 지도받아 첫 개인전을 서울 신세계미술관에서 개최하였다. 이때 선보인 작품들은 과거와 현재의 시공간을 뛰어넘어 강렬한 색감과 역동성이 세월의 풍상을 품은 색감으로 전통과 현대가 하나로 접목된 한국채색화의 정수를 보여 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한국화의 정체성과 방향에 대한 연구가 발아된 시점으로 당시 채색화가(1970년대) 일본화라는 식민사관의 인식이 있었던 시기에 선생은 남다른 집념으로 민족적인 채색화 연구에 몰두하여 우리의 빛깔에 담긴 심미성과 독창성을정립한 업적이었다.


이와 같은 이화자 선생의 작품에 담긴 정신성은 1970년대 말부터 동양화의 원류를 찾아 동아시아(중국 돈황, 인도아잔타, 중앙아시아)등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한국 미술의 뿌리가 불교사관을 통해 나타내고 있음을 인식한 바탕이었다. 이는 고구려 고분벽화와 고려불화 그리고 조선시대의 민화에 녹아내린 오랜 역사를 가진 민족적인 채색화를 깊게 연구하여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업적이었다.


이와 같은 정신성의 바탕에서 이루어진 선생의 작품들은 사찰의 풍경과 벽화 그리고 탱화와 민화에 담긴 의식을 현대적인 필치로 형상화하여 민족의 정통한 채색화 작업에 정진하였다. 이와 같은 의식은 재료의 기법에서 극명하게 나타난다. 이는 분채나 석채를 사용하면서 바탕에 호분을 제거하고 아교와 먹을 바탕으로 채색은 바탕에 스미고 종이의 부드러운 질감이 살아나도록 하는 독창적인 작업이 이루어진 까닭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불화, 풍경화, 화조화(花鳥畵), 정물화, 영모화(翎毛畵) 등, 다양한 한국적 소재와 채색의 작품 세계를 통하여 한국 전통 회화의 맥을 채색화로부터 계승하고자한 열정이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선생의 채색화는 차분히 가라앉은 먹빛을 바탕으로 실험적인 채색을 구사하여 어둠 속에서 영롱한 빛처럼 형상이 중후하게 부각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섬세한 관찰과 비상한 기법으로 우리의 전통적인 소재를 중시하여 전통을 넘어선 현대적인 공간구성을 완성시켜낸 것이다. 이는 정교한 세필의 노동력을 요하는 화면구성에서 깊은 울림의 빛깔을 통하여 전통방식을 넘어선 독자적인 회화세계를 이루어 정통한 민족적 조형세계의 회화성을 현대적으로 발전시킨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화자선생의 작품은 몇 가지 소재의 특징을 두고 있다.


이는 한국적 색채에 대한 탁월한 감각으로 전통문화의 새로운 인식으로 부터 시작되었다.

이화자 선생의 창작세계는 90년대 들어 자기중심적인 회화세계를 추구하려는 열정이 가득하였다. 이에 독자적인 예술세계의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이를 완성시키려는 의식에서 10여 년간 재직 중이던 교수직(1984-1994년)을 그만두고 본격적인 자기 작업을 시작하였다. 이에 민족적인 정통한 채색화가의 정체성을 인식하게 되면서 고유한 미적 감각을 체득하여 단청의 성분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였을 만큼 치열하게 채색화 연구에 열정을 쏟아낸 것이다.


이와 같은 선생의 작업은 다양한 전개의 과정을 보여주었다. 이는 벽화에서부터 풍경과 인물 그리고 영모와 화조는 물론 기하학적인 추상에 이르기까지 전통적 소재를 두루 섭렵하였던 것이다. 특히 선생의 작업은 세필의 정교한 묘사와 거칠고 투박한 묘사 그리고 콜라주와 같은 다양한 기법이 탐구되었다. 이와 같은 실험적인 오랜 작업을 통하여 전통 채색화가 가지고 있는 색감의 느낌을 정확하게 인식하였다. 이에 전통 채색화의 미적 특성들이 중후하게 우러나오는 깊이 있는발색과 자연의 색채를 닮은 채색이 구현되었다, 이는 빛을 여과한 것과 같은 투명함 속에서 강열하면서도 거슬리지 않는 순수성이 들어있는 색채미를 드러내어 선생의 한국적 색채에 대한 탁월한 감각의 작업을 주목하게 한 것이다.
또한, 선생은 우리 민족 고유의 미감이 담긴 다양한 소재의 채색화를 바탕으로 이를 현대적인 추상화 작업으로 한국미를 승화시켜왔다. 이는 선생의 채색화 작품세계가 가장 한국적인 감성을 발산하고 있는 동시에 민족미술의 보고라 할 수 있을 만큼 고유한 사상과 정신성이 마치 살아 숨 쉬고 있는 예술세계의 경지를 이루고 있는 바탕이다.

이와 같은 선생의 작품에서 상징적인 몇 작품을 살펴본다.



전통적인 채색화묘법이 가져다준 자연의 사실적인 작품들.....


선생의 전통적인 회화작업을 바탕으로 실험적인 의식을 구현한 작품들은 화려하고 이색적이며 다양하다. 단아하면서도 정갈한 느낌을 매만지게 하는 선생의 작품들은 옛사람들이 즐겨 찾아갔던, 보았던, 거닐었던, 살았던, 원형을 간직하려는 심상적 대상들이 작품요소 요소에서 치열하게 나타난다. 이와 같은 작품들은 치밀하게 사실적인 묘사가 두드러지면서도 전체적인 구성과 배경처리에서 현대적 감각이 돋보인다. 이는 균형적인 조화의 채색기법이 뛰어난 선생의 독창적인 능력으로 작품마다 한결 깊은 울림이 느껴진다.


작품 중 「봄,1980년 작, 종이에 분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은 한국채색화의 묘법으로 표현한 전형적인 우리의 전원풍경이다. 이른 새벽을 깨우는 농가의 서정은 방금 일을 마치고 들어온 농민의 일상이 거울처럼 투명하다. 한해를 시작하는 봄날 일찍 쥐불놀이를 피워 일상적 삶의 시간을 공간성으로 담아낸 작품은 한국전통 채색회화의 어제와 오늘을 아우른 작품이다.
 
작품 「방황,1986년 작, 종이에 분채, 서울시립미술관 소장」은 한국적인 전통 채색으로 서민의 삶에 담긴 정서가 고스란히 채색화 속에 녹아내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버드나무 가지사이로 고즈넉하게 안착되어 있는 격자 문양의 사찰의 문에 드러난 불빛이 어머니의 내밀한 기원을 비추는 사실적인 작품이다. 깊고 차분한 작품 속에서 많은 생각을 들추게 한다.

이어 작품 천년고찰 「마곡사 싸리문, 1994년 작, 종이 위에 분채, 개인소장」은 전형적인 우리의 서정성을 보여준 설경작품이다. 차곡하게 쌓아올린 돌담사이로 싸리문을 반쯤 열어 놓은 구성에서 누구든 이 암자에서 거친 심신을 달랠 수 있는 의식이 쉽게 느껴진다. 이처럼 다양한 한국적 소재와 채색으로 표현한 작품 세계들은 한국 전통 회화의 맥을 채색화로 이어가고자한 열정이 가득 배어있다.


선생의 풍어제시리즈 작품은 색채감각과 공간구성의 승화된 조화를 통하여 뛰어난 독창성을 보여준다,

「풍어제(豊漁祭)-1992년작, 먹, 분채, 아교, 비단천, 화선지」 작품에서는 어촌의 흥청거리는 만선(滿船)의 기쁨을 다양한 색상의 대비를 유도하여 주관적 심미성을 담아낸 작품이다. 이는 우리의 무속을 연상시키는 작품으로 기원하는 여인의 치마저고리의 기다란 자락에 스며있는 한(恨)과 인고(忍苦)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러나 작품에서는 대상을 묘사하는 것 보다는 대담한 공간의 대비와 색채로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그리고 작품 「초혼(招魂) - 먹,분채,아교, 비단천, 화선지」은 인간 세상의 고독한 삶 속에서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한 깊은 사색의 흔적이 느껴지는 영혼의 이미지를 승화시킨 작품이다. 이는 우리의 전통 문화에서 볼 수 있는 일종의 복혼의식(復魂儀式)을 담았다.『예서(禮書)』에 기록된 “죽은 사람의 웃옷을 가지고 지붕에 올라가서 왼손으로 옷깃을 잡고, 죽은 이의 혼을 부르는 과정이 그려졌다.


이렇듯 이화자 선생의 최근 작품들을 보면 지금까지 전통 미술에서 보았던 것들이 본질만 남기고 하나하나 지워가고 있는 현대적 조형작업으로 승화시키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이는 그동안 선생의 작업에서 나타난 자연의 형상들은 단순한 외형의 피상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근작들에서는 원형적인 정신성이 투여되어 내밀한 조형형식론으로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 안으로 깊숙이 배어들어 깊은 예술적 울림이 펴져가길 추구한 의식이다.


다시 말하면 최근 작품들은 이전의 구체적인 대상에서 벗어나 우리 민족이 품어온 정신적 대상의 작업세계라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작품들은 부분적인 묘사가 종합되고, 일정 대상에 국한하였던 시각이 자유롭게 풀어져 가는 양상을 띠고 있다. 이를테면 어떤 작품은 마치 고려불화를 현대적 조형감각으로 해체하여 재구성한 느낌이 들고, 어떤 작품에서는 유행이나 시류에 함몰되어 개성 없는 양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현실을 질타하는 느낌이 분명하다. 그러나 선생의 작품은 언제나 전통 채색화의 고유한 미감을 품고 있다.


우리 민족의 삶속 시간에 깃든 형상들이 채색화의 정신성으로 나타나 후대에게 교훈적 가치로 조명되길 희망하면서 ....

이화자 선생은 채색화의 전통성과 현대성을 온전하게 조화시킨 현대미술의 채색화 작가이다. 최근작업에서 보듯이 고려불화의 의습선 같은 띠 모양의 곡선들의 조합과 여백의 활용, 크고 작은 색면들의 조화는 실로 절묘하다. 이는 전통 문양이나 의습선 등에서 발췌해온 선의 활용이 색채에 생동감을 주면서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있다. 또한, 전체적인 효과를 위하여 색채의 배열에 탁월한 감각을 담아내고 있다. 크고 작은 색면들이 적절히 배열되었을 때 전체적으로 통일감을 주면서 그 색채들이 서로 섞이고 충돌하며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내도록 하는 것이 이채롭다.


결과적으로 선생의 채색화작업은 전통성과 현대성을 잘 조화시켜 나가고 있는 보기 드문 회화 세계를 추구하는 작업이다. 재료의 특성과 기법을 잘 이해하고 구사하고 있으며, 전통적 형상의 숙달과 색채 구사의 고유한 미적 감각을 완성적으로 체득하고 있다. 거기에 현대성을 적절히 가미하여 친숙한 소재를 시대감각에 맞는 신축성으로 승화시킨 폭넓은 창작활동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선생은 한동안 건강문제로 창작활동을 쉬었던 적이 있었다. 이후 새롭게 작업한 첫 작품이 양수리 자연의 시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이전과 다른 표현어법을 구사하고 있다. 시대정신을 바탕에 두고 사물의 구체화가 아닌 형태의 색면 분할을 통하여 사의적인 형식미를 극대화 시켰다. 바로 순간적인 간극의 테크닉이 절제된 색묘의 감각과 어우러지면서 실제 가고 싶은 자연을 보는 실경처럼 그 상징미가 두드러진다.


이와 같은 작품의 변화를 가져온 계기는 2000년 이후였다. 한동안 지병으로 제대로 된 작품을 그리지 못했고 발표도 할 수 없었지만 건강이 회복 된 이후부터 자연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이른 봄처럼 새로움을 추구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름 강변에 버드나무처럼 자유로운 영혼으로 남은 생을 살고자하였다. 가을에는 아름다운 단풍 길을 걷고 싶은 충동을 매만졌다. 추운겨울 동토의 허공에 피어오르는 오로라처럼 자연의 정신과 기운이 작품에서 향기로 피어나는 작업에 열중하였다. 선생은 현재 양서면 양수리의 보금자리에서 한국채색화의 완성을 위하여 치열한 작업에 열중하고 있다.


선생의 일생을 천착하여온 빛깔의 미학이 우리의 것을 그려가는 후진 작가들에게 교훈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기원(Wish), 화선지위에 분채, 112.1x162.2cm, 1997]




[세월(Time & Tide), 화선지위에 분채, 84X65cm 1985]





[인도기행2(Trip to the India 2), 화선지위에 분채, 130.3X89.4cm, 1997]




[초여름(An Early Spring), 화선지위에 분채, 240x190cm, 1989]




[풍어제(Fesival for a good haul), 화선지위에 분채, 58x70cm, 1990]




양평군립미술관 학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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